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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노동정책연구원

각종 원고

영화 ‘다음 소희’가 담지 못한 현실

전북노동정책연구원2023.04.28 10:34조회 수 12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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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가 16년 만에 살펴본 현장실습제도 실태
학습권, 노동권 침해 심각…정작 취업에 도움 된다는 증거는 없어

이 글은 2023년 4월 12일 교육희망에 실린 ‘영화 ‘다음 소희’가 담지 못한 현실 1편’에 이어 국가인권위원회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인권개선 방안마련 실태조사」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 편집자주

 

 

들어가며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은 “다양한 직업적 체험과 현장적응력 제고를 위해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을 경험하고 적용하는 교육과정의 일환”(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현장실습은 교육과정의 일환이라는 외양과 달리 산업체로의 취업을 의미해왔고, 그 과정에서 불안정한 지위에 놓인 현장실습생들의 권리침해가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심지어 광주 기아자동차 공장 뇌출혈, 울산 금영ETS 공장 지붕 붕괴 사망, 울산 신항만 공사 작업선 전복 사망, CJ제일제당 진천 공장 자살, 성남 토다이 자살, 전주 LGU+ 고객센터 자살, 제주 생수업체 사망 등 현장실습생이 중대 재해로 생명과 건강을 잃는 사례도 끊이지 않았다.

 

교사, 청소년노동인권 활동가들은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 폐지를 외쳤지만, 정부는 ‘사고’의 예방에 초점을 둔 부분적 보완을 반복했다. 영화 ‘다음 소희’의 배경이 된 전주LGU+ 고객센터 사망 사건에 이르러 교육부는 취업과 실습을 분리한다는 취지의 이른바 ‘학습중심 현장실습 제도’를 발표했지만, 그 역시 제도의 본질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2021년 10월 6일, 전남 여수 소재 특성화고에 재학 중이던 홍정운 님이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 중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현장실습제도는 다시금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

 

지난해 12월, 현장실습제도의 실태를 다룬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고서가 발간된 배경이다. 국가인권위는 2006년에 현장실습제도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이번 보고서는 16년 만의 보고서다. 이 실태조사 연구에 청소년노동인권 활동가들과 함께 참여했으며 아래에서는 연구의 주요 결과를 소개한다. 현장실습제도를 둘러싼 논의에 다양한 세부쟁점이 존재하지만, 여기에서는 직업교육과 일반교육 사이의 관계, 현장실습제도의 교육적 실효성, 현장실습제도의 노동시장 이행(School-to-work transition) 성과 세 가지로 압축하여 다룬다.

 

직업교육과 일반교육 

연구는 현장실습제도를 다루기 전에 중등교육과정에서 직업교육의 위치를 살펴보는 작업에서 출발했다. 우리 사회에서 현장실습제도가 취업 통로로 수용되게 된 연원을 짚어보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국가교육과정에서 중등직업교육의 목표는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인력 양성·공급’으로 제시되고, 현장실습제도 역시 공간적 정의에서 ‘산업현장’이 강조된다. 이같이 직업교육의 목표를 취업에 필요한 기술 훈련에 두는 기능주의적 관점을 직업주의(Vocationalism)라고 칭한다.

  

▲ 교육부의 매뉴얼에는 다양한 유형의 현장실습이 존재하지만 현실에서 현장실습이란 용어는 대부분 산업체 현장실습을 지칭한다.  © 자료 : 2022년 개정 직업계고 현장실습 공통 매뉴얼


직업주의적 입장은 고등학교를 마지막 교육단계로 간주하여 고졸 취업을 강조하고 미래보다는 현재의 직업세계에 초점을 맞추며, 범용적인 기능보다는 특정 기업에 맞춘 교육과 훈련을 강조한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직업주의적 입장은 직업교육이 인문‧일반교육과 분리되어야 한다고 간주한다. 예컨대 「2022개정교육과정」에서 직업계고에만 ‘노동인권과 산업안전보건’ 교과가 신설되었는데, 이 역시 일반교육과 직업교육을 분리하는 직업주의적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직업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으로는 인문주의와 신직업주의(New Vocationalism), 비판적 직업주의를 들 수 있다. 비판자들은 일반교육과 직업교육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고등학교 교육은 학생들이 비판적 미래 사회의 시민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초역량을 기르는 과정이어야 하고, 직업교육이 지나치게 협소하게 진행될 경우 오히려 노동시장으로의 진입 이후 생애기회와 경쟁력을 제한하게 될 수 있다. 유네스코는 취업을 위한 교육이나 기업적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교육에만 집중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단호히 규정한다. ‘노동교육’의 예를 다시 가져오면, 노동교육은 당면한 취업예비자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미래 사회의 시민이 될 모든 중등교육과정 학생들에게 동등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그 ‘동등성’ 자체가 중요한 교육적 가치가 될 것이다.

 

직업교육과 일반교육을 분리하는 직업주의적 편향은 특성화고 학생들에게는 인문적 소양 함양과 보통교과 교육을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수행해도 된다는 교육관으로 연결된다. 고등학교를 최종 교육 단계로 간주하는 직업주의적 관점에서는 졸업 이후에 기초학습능력의 결손을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이므로, 오히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기초학습능력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학생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대상에서 아예 제외했다.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전인적 성장보다 기능적 성장을 기대하는 사회적 인식의 반영이다. 현재 특성화고 학생의 기초학력 성취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국가 통계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OECD의 국제학업성취평가(PISA) 자료를 통해 이를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국 직업계고 학생들의 기초학력은 2012년 이후 뚜렷하게 저하되기 시작하여 2018년에는 기초수준(baseline)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의 비율이 1/3까지 확대되었다. 같은 기간 직업계고의 보통교과 수업시간 역시 주요 선진국에 비해 뚜렷하게 줄어들었다. OECD는 기초수준을 모든 학생이 의무교육이 종료되는 시점에 도달하도록 기대하는 수준으로 정의한다. 실제 실습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일을 할 때 쓰이는 용어에 대한 기초학습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 한국 직업계고 읽기 영역 기초수준 미달 학생 비중(단위 : %)  © 자료 : OECD PISA

 

또한 최근 특성화고 졸업생의 진로 선택에서 취업자 비중은 20%대에 불과하고 진학자를 포함한 비취업자 비중이 3/4에 이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특성화고에서는 학생들의 목표가 취업에 있다고 간주하고 직업주의적 교육관을 토대로 교육과정이 구성된다. 이 같은 교육과정의 운영은 20% 학생에게만 초점을 맞춰, 대다수 특성화고 학생들은 다양한 진로 선택의 기회를 제공받는 대신 취업이라는 한정된 선택지 안에서 학교생활을 수행하게 된다.

 

▲ 특성화고 학생의 졸업 후 진로  © 자료 : 교육기본통계


한국의 현장실습제도는 당연하게도 직업주의적 인식에서 출발했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다시 말해 산업체의 노동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산업교육진흥법」(현재의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이 제정되었고 직업계고 졸업 전 현장실습 이수가 의무화되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는 교육과정의 일환이라지만 정작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등 교육관계법에서는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더 나아가 직업교육을 목적으로 한 고등학교에 대한 정의 역시 법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한국의 직업교육, 현장실습제도는 개념적‧제도적 뒷받침 없이 산업적 필요에 따라 도구적으로 활용되어온 것이다. 현장실습제도가 시행된 후 50년 동안 변화가 거듭되었으나 변화의 계기는 언제나 취업률이었다. ‘취업률’이 낮아지면 현장실습 규제를 완화하여 고졸 취업자를 늘렸고, 현장실습 과정에서 부작용이 늘어나면 규제를 다소 강화하는 식이었다.

 

▲ 현장실습제도의 주요 변화

 

현장실습제도의 교육적 실효성 

이미 경험적으로, 그리고 여러 실증연구에서도 현장실습제도를 통해 취업과 학습(교육)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음이 확인되어 왔다. 교내 실습보다 산업체 실습이 우월할 것이라는 믿음은 산업체 현장실습제도를 지탱하는 주요 축 중 하나이지만 교육적 효과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며 참여자들의 경험도 교육적 경험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현장실습을 취업과 동의어로 인식하고 있었고 현장실습제도는 노동시장 이행의 통로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그렇게 현장실습 정책은 양립불가능한 두 목표 중 취업만 남기고 학습‧교육은 방기했다.

 

‘학습중심 현장실습제도’로 범위를 좁혀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학습중심 현장실습’ 제도는 교육과 취업을 분리하겠다는 취지로 시행되었지만 그 이전의 현장실습제도와 질적인 차이를 보여주지 않았다. 현장실습에 참여했던 심층면접 참여자들은 실습 사업체에 전담교사, 교육 장소, 교육 교재, 평가가 부재하거나 미흡했으며 수행했던 역할도 단순 업무에 그쳤다고 응답했다. 전담 기업현장교사를 배정할 수 없는 여건인 5인 미만 영세사업체로의 현장실습도 15%에 이른다. 그러나 실습 참여자는 실습 과정에서 학습적 경험이 부재하더라도 취업을 위한 통과의례로써 이를 수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 때문에 외부로 드러나는 부정적 경험은 실제보다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현장실습 사업체에는 학교전담노무사의 사전 점검과 기업 지원 코칭이 이루어지지만 점검 항목은 정성 평가 중심이고 정작 학습 현황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 관계자들은 학교의 추천을 받은 ‘성실한’ 노동력을 공급받고 실습기간 동안 지켜본 후 기업 수요에 맞지 않으면 고용계약을 맺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현장실습제도의 가장 큰 이점으로 꼽았다. 결국 ‘학습중심 현장실습제도’에서도 기업은 교육적 목적 대신 인력 채용 과정에서의 위험비용을 줄이기 위해 현장실습제도를 활용하고 있었다.

 

한편, 현장실습제도는 학교 교육과정 편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특성화고에서는 교육과정 운영의 목적을 현장실습을 통한 조기 취업에 두며 특성화고 1학년 교육과정부터 자격증 취득을 위한 기능훈련 과정으로 편성한다. 3학년에는 산업체 현장실습이 운영되어야 하므로 졸업을 위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보통교과는 2학년까지만 편성된다. 전문교과의 경우에도 1, 2학년 때 배운 기초 교과를 3학년 교과에서 심화학습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3학년 2학기에 편성된 전문교과는 현장실습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수업 결손이 발생하고 있다. 특성화고 3학년 교육과정의 파행은 현장실습 비참여자와 중도복귀자의 학습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한국교육고용패널II」자료에서 현장실습 중도복귀자 중 38.1%는 학교에서 정상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심지어 학교의 취업 지원에 있어서도 현장실습 중도복귀자가 현장실습 완료자뿐만 아니라 현장실습 미참여자에 비해서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현장실습이 교육적 목적이었다면 중단 후 복귀자에게 불이익 대신 더 적극적인 교육적 지원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입안된 현장실습 관련 법‧제도와 거리가 먼 실제의 제도 운영실태도 연구 과정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서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매년 현장실습 실태조사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도록 규정하지만 실제로는 하이파이브 시스템 운영을 실태조사로 갈음하고 있었다. 하이파이브는 교육부에서 대한상공회의소에 위탁 운영하는 현장실습관리시스템이다. 연구를 위해 하이파이브 자료 제공을 요청한 연구진에게 교육부는 하이파이브 자료의 신뢰성과 정합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전달했다. 연구진 역시 자료의 곳곳에서 교육부가 자료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실태조사를 하이파이브 시스템 운영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실태를 파악하지 않고 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그 결과도 정기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당장 2022년에 이루어진 현장실습 현황은 어디에서도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 교육부는 입력된 자료를 검증하지 않기 때문에 자료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현장실습기간이 2020년 9월 1일~2023년 8월 31일, 2019년 9월 2일~2022년 8월 31일, 2019년 12월 26일~2021년 2월 28일 명백히 잘못입력되어 있는 사례가 다수 있다.   © 현장실습 관리시스템 하이파이브 화면(hifive.go.kr)

 

교육부는 ‘학습중심 현장실습제도’를 발표하며 교육적 실습이 운영되도록 하겠다며 실습기간의 규제를 각별히 강조한다. 실습기간은 최대 3개월(12주)로 제한했고, 선도기업은 최소 4주 이상 실습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해진 실습기간을 초과하여 실습이 이루어지면 과태료 처분 대상이 된다.

 

그러나 하이파이브 원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8~2021년 4년 동안 현장실습이 12주 이상 운영된 사례는 총 12,043건으로 전체 현장실습 사례의 13.4%에 이르렀다.‘학습중심 현장실습제도’ 아래에서도 조기 실습-장기 실습-조기 취업의 연결고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같은 기간 선도기업에서 실습 최소기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사례도 전체 선도기업 실습의 16.7%였다. 여기에 해당하는 현장실습 사례들은 교육부의 우려대로 숙련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 반복 직무였거나 단기 노동력 공급의 목적이었을 수 있다.기간 초과 실습은 최소 1천 건 이상으로 확인되었지만, 과태료 처분은 없었다. 예정된 실습 기간보다 실습이 조기 종료된 사례도 전체의 17%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현장실습제도에 학습적 목적의 운영이 자리 잡을 공간은 대단히 좁다. 특성화고 교사, 관계자들은 특성화고 실험‧실습 예산이 크게 늘어나고 기자재가 확충되었기 때문에 기업의 작업장보다 학교의 실습실 환경이 못하지 않거나 더 훌륭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교육을 전담하는 교사가 있는 학교가 기업보다 더 잘 가르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현장실습제도의 노동시장 이행 성과

겉포장과 달리 50년 동안 유지되어온 현장실습제도의 실제 목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노동력 수급'이었다. 이번 연구 과정에서 만난 학생, 교사, 기업관계자들도 현장실습제도를 취업과 동의어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현장실습제도를 통한 노동력 수급은 누구에게 이득을 주었을까? 산업체와 국가의 이득은 명확해 보인다. 학생에게는 어떠했을까? 물론 산업체, 국가의 이해와 학생의 이해가 완전히 달랐다면 현장실습제도가 유지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현장실습제도와 조기취업이 특성화고 학생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신념이 학생, 교사, 학부모, 그리고 사회 일반에 형성되어 있다. ‘신념’이라고 쓴 이유는 여러 선행연구가 공통적으로 현장실습제도 참여가 노동시장 이행 성과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직업계고 졸업자 취업 통계」는 특성화고 졸업자가 취업한 사업체의 평균 규모가 현장실습 사업체의 규모보다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임금, 노동안전, 고용안정성, 복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업체 규모별 분절이 존재하는 한국 노동시장의 특성상 현장실습을 통해 취업하게 된 특성화고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교육고용패널Ⅱ」의 분석 결과에서도 현장실습 참여 여부와 고용형태, 임금, 사업체 노동조합 유무 등 노동 변인 사이에는 유의미한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차 여러 변인을 통제하여 확인한 결과 통념과 달리 자격증 취득, 조기취업도 노동시장 이행 성과에 유의미한 효과는 없었다. 반면 졸업 이후 취업과 진학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한 인구의 비중은 현장실습 참여자 쪽이 비참여자에 비해 유의하게 높았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이를 종합하면 현장실습제도를 노동시장 이행의 통로로 활용하는 기존의 관행은 오히려 특성화고 학생의 생애기회를 불리한 방향으로 제약했을 가능성이 높다.

 

▲ 현장실습 참여 여부와 사업체 규모(백분율)  © 자료 : 한국교육고용패널Ⅱ

 

그러함에도 특성화고 학생을 위해 현장실습제도가 존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본 뜻은 현장실습 이외의 취업 통로가 마땅하지 않다는 우려에 있다. 이번 연구가 다른 선행연구와 차별점을 갖는다면, 청소년 취업지원제도의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단서를 확인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일자리의 취득에 학교(취업지원센터, 교사)의 지원을 받은 특성화고 졸업생은 그렇지 않았던 경우에 비해 임금, 고용형태, 노동조합 가입률 등이 더 나은 조건일 가능성이 뚜렷하게 높았다. 대학 비진학 청소년의 일할 권리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때에도 정책적 초점은 '현장실습제도에서 안정적 취업지원제도 운영'으로 옮겨지는 것이 타당하다는 뜻이다.

 

한편,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 참여와 이를 통한 취업의 욕구는 그 이면을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면접에 참여한 특성화고 학생들은 사회적 인정과 성취를 욕구했으며 특성화고로의 진학이 중학교까지의 경험을 벗어나 인정과 성취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특성화고 진학 이후에도 성취를 이룰 수 있는 통로가 여전히 협소했으며 현장실습 참여를 통한 취업은 학생들이 인정욕과 성취욕을 충족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였다. 현장실습의 참여에는 고등학교 재학 3년 동안의 출결, 성적, 자격증 취득 등을 매개로 경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참여자들에게는 현장실습 경험 자체가 경쟁을 거친 성취의 결과이다.

 

그래서 이들의 선택과 경험에는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자기 전략이 있었음을 긍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수립한 전략이 충분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토대로 이루어졌을까? 경쟁 끝에 이루어진 현장실습 참여는 앞에서 다룬 것처럼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학교는 자격증 취득을 강조하고 교육과정도 자격증 취득 위주로 편성했지만 실상 자격증 취득도 좋은 일자리로의 취업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들이 경험한 시행착오와 불이익은 이들에게 맹목적일 만큼 산업체에서의 도구적‧기능적 역할을 강요해온 한국 중등직업교육 정책 수립자와 그 실행자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단기간의 노동시장 이행성과를 기준으로 한 제도 평가가 적절한 방법이 아닐 수 있음을 언급하여 둔다. 이번 연구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진학하지 않은 취업자끼리만 비교하였고 그 비교 시점이 고등학교 졸업 1년 뒤로 시간적 거리가 가깝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시간이 수년 이상 경과 한 뒤 노동시장 이행 성과 차이가 어떠할지, 향후 고등교육기관으로 진학한 졸업자와 비교하였을 때에는 차이가 존재하지 않을지 등에 대해서는 쉽게 대답할 수 없다. 특성화고 학생의 첫 노동시장 진입은 생애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지만 그 영향의 범위를 단기로 한정하여 비교하려는 편향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편향은 특성화고 학생을 전인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선과 관련된다. 이번 연구 역시 그 편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나가며

현장실습제도가 특성화고 학생의 학습권, 노동권을 종합적으로 침해하고, 노동시장 이행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이번 연구의 결론은 2006년 국가인권위 보고서가 밝힌 현실과 동일하다. 차별점을 꼽자면 직업교육의 관점과 현장실습제도 사이의 관계를 고찰했다는 점이다. 산업체 수요에 조응해 노동시장으로의 이행을 중요하게 여기는 직업주의적 직업교육정책은 교사와 학생들에게 산업체 실습과 조기취업을 당연한 것으로 내면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직업주의적 시각의 내면화는 현장실습제도를 지탱하는 동시에 현장실습제도의 운영을 위해 직업주의적 직업교육을 강화하는 되먹임(feedback) 관계가 작동한다.

 

그래서 연구의 첫 번째 제언은 비교육적 산업체 실습을 중단하고 교육과정을 정상화하라는 것이다. 전문교과의 현장실습 대체를 허용하는 지침을 폐기하고 고등학교 3학년 보통교과와 전문교과의 정상적인 교육과정이 운영되어야 한다. 산업체 실습을 대체하고 교사, 교실, 교재, 평가가 갖춘 다양한 형태의 학습적 실습이 전문교과의 일부로서 정규 교육과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직업교육의 정의와 역할을 규율하는 법·제도의 빈곤도 시급히 시정되어야 한다. 「직업훈련교육촉진법」이 고교 직업교육과 현장실습제도의 시행 근거가 되는 기형적인 현실을 바로잡아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에 직업교육을 정의하고 그에 근거하여 국가교육과정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때 직업교육의 목적은 “산업사회 인력 양성”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안녕을 창조(UNESCO)하고 각자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전인적 인간의 성장(OECD)에 둬야할 것이다. 이미 거의 모든 나라에서 중등단계의 직업교육은 인문교육과 통합되는 추세이고 기능습득보다 기초적인 지식에 강조를 두고 있다.

 

실습생의 보호를 이유로 오히려 실습생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면서 노동권을 침해하는 역설도 해소되어야 한다. 근로계약서 작성 여부로 노동자성의 유무를 정하는 것은 노동자성 개념을 대단히 협소하게 해석하는 것으로, 국제 규범은 다양한 형태의 노동관계의 출현에 따라 종래의 인적 종속(subordination)을 넘어 다양한 계약관계를 포괄하도록 확장할 것을 권고한다. 이 같은 권고는 현장실습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근로기준법의 조항 일부를 실습생에게 준용하는 방식은 한계가 분명하다. 실습의 형태를 막론하고 학생의 노동권과 건강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법체계가 정비되어야 한다.

 

특성화고 학생 당사자로 구성된 특성화고노조에서는 산업체 현장실습제도 존치와 노동권 강화를 주장한다. 현장실습제도가 아니라면 마땅히 취업을 지원받을 수 없는 현실이 산업체 현장실습 폐지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 우려에 공감하며, 연구의 결론에서 언급하는 산업체 현장실습 중단이 취업 지원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님을 덧붙인다. 앞서 다뤘듯 현장실습제도가 노동시장 이행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찾을 수 없었으며, 오히려 현장실습 참여자에게 불리한 선택으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연구에서는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현장실습제도가 필요한 이유가 노동시장 진입 통로라면 그에 해당하는 별도의 제도 운영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동권의 온전한 보장도 이 편이 유리하다. 현장실습제도가 직업교육의 정책적 자원을 스스로에게로 수렴시키며 오히려 별도 취업지원제도 수립의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도 살펴주길 당부하고 싶다. 실패한 제도가 대안적 제도의 탄생을 방해하는 실정이라면 더욱 제도의 실패를 지적하고 이를 걷어내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 내내 특성화고 학생에 대한 사회의 편견, 무관심을 생각했다. 그동안 특성화고 학생을 위한 것 마냥 포장된 제도들이 운영되어 왔으나 정작 그 제도가 당사자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웹드라마 좋좋소에 나왔던 “믿음으로 가는 거지”라는 대사로 이 현실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특성화고 진학자에 대한 관심의 결여에서 기인할 터다. 영화 ‘다음 소희’는 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정, 시혜에 그친다면 곤란하다. 50년을 이어 온 산업체 현장실습제도의 질곡, 토대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본문에 별도 인용표기를 하지 않았으나 본 글을 작성하는데 주요하게 참고한 문헌을 아래에 기재하여 놓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보고서를 참고해주세요. 전북노동정책연구원이 2022년 12월 6일에 국가인권위에 제출한 보고서로 연구에 함께 한 이들은 강문식(전북노동정책연구원), 김성호(해담노동법률사무소), 노현정(전북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이수정(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임동헌(광주전자공업고등학교), 조용화(전북노동정책연구원), 하인호(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입니다.   

 

· 김경엽. (2021). 직업계고 교사가 바라본 직업교육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2022개정교육과정 관련 연속토론회 4차 직업교육은 어떻게 개선해야하는가? 자료집. 

· 김기헌·김현철·임지연·박영실·이예정·신원영. (2006). 실업계 고등학교 현장실습 실태조사-교육권·학습권·건강권 관점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황실태조사. 

· 임언·이수정·윤형한·정혜령. (2017). 고교 직업교육 목적에 대한 교사의 인식 차이와 관련 요인. 직업교육연구, 36(2). 

· 임언·임해경·길혜지. (2019). 특성화고등학교 학생의 기초학습능력 실태와 제고 방안. 한국직업능력개발원. 

· 장원섭. (2001). 해방적 직업교육을 위한 제안. 교육사회학연구, 11(2). 

· 진숙경·김혜진·신충섭. (2017). 특성화고 현장실습 개선방안 연구. 경기도교육연구원. 

· 황여정·김승경. (2018). 청소년 ‘일 경험’ 제도 운영 실태 및 정책방안 연구I.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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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중간지원조직(노동센터)의 역할 (by 전북노동정책연구원) 올해 5월1일은 133주년 세계노동절이다(매일노동뉴스) (by 전북노동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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