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교육비전 토론회 발제문
-2021년 6월 14일 17:00
-전라북도교육청 강당
2022교육비전 – 노동정책
“평등한 일터, 평등한 교육”
강문식(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민주노총전북본부 정책국장)
지방교육청에서 노동정책의 필요성
교육청/학교에는 교원, 공무원, 비정규직(공무직, 기간제) 등 다양한 직종/고용형태의 노동자들이 소속되어 있음. 교육청의 노동정책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음. 첫 번째는 교육청/학교에 소속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및 노사관계에 관한 협의의 노동정책, 두 번째는 우리 사회 노동-자본 사이의 역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광의의 노동정책으로 나눌 수 있음.
일반적으로 노동정책 차원에서 지방정부의 역할과 제도화는 △규범 설정자(rule setting), △사용자(model employer), △지도감독․모니터링(monitoring), △노동자 지원 중간지원조직(worker center) 설치운영, △이해당사자 참여형 거버넌스(governance) 다섯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음(김종진, 2016). 이중 노동자지원 중간지원조직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가지는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교육청이 동시에 수행해야할 역할임.
여기에서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규범 설정과 모범적 사용자 역할임. 예를 들어 전라북도교육청이 시행하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은 관련 기관 혹 민간영역에도 규범이 되어 유사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짐. 전라북도교육청과 노동조합의 노사관계 역시 모델이 되어 여타 공공기관과 민간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됨. 따라서 협의의 노동정책과 광의의 노동정책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며, 엄격히 분리되는 것은 아님.
노동행정은 국가사무로 규정되어 왔으나 근래 지방정부(지자체)의 책무가 강조되며 지역노동정책이 중요 의제로 부각되고 있음.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정부의 노동억압‧배제 정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동친화적 정책을 폈던 서울시 사례에서 특히 두드러졌음. 당시 서울시가 최초로 노동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지방정부 노동정책이 주요 담론으로 형성되었고, 현재에는 전북, 대전, (세종)을 제외한 모든 광역지자체에 노동기본조례가 제정되었고 다수의 지자체가 이를 토대로 노동정책기본계획을 수립했거나 수립 추진 중임.
한편 민주노총정책연구원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민주노총(지역본부)과의 노정협의(교섭) 등 별도 거버넌스를 추진한 지자체들이, 민주노총 배제(한국노총·노사민정협의회 중심)하는 지자체들에 비해, 노동존중 정책 추진이 상대적으로 양호하게 나타났음. 특히 기존의 노사민정협의회를 비롯한 노동 관계 거버넌스 기구들은 노사당사자성이 약하고 민에 과도한 역할을 부여하여 노동대표성을 약화시키는 문제가 있음. 노총과의 총괄적 정책협의를 추진하는 것은 노총의 노동대표성을 인정한 결과일 것이라는 측면에서 노동존중 정책 추진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음.
이와 같은 노동정책 시행에는 공통적으로 단체장의 의지와 제도화가 수반되어야 함. 제도화는 노동관계 조례 제정과 그 실질적 적용(죽은 조례x), 포괄적이고 독립적이며 실질적 권한을 가진 노동정책 전담부서 설치로 요약할 수 있음. 특히 전담부서 설치는 고유 업무를 규정하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함.
이상의 내용은 지방교육청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전라북도교육청 역시 규범 설정, 모범적 사용자, 지도감독‧모니터링, 거버넌스의 역할과 제도화가 필요함.
전라북도교육청의 노동정책‧노정협의 현황
2018년, 민주노총전북본부는 김승환 전라북도교육감 후보와 정책협약을 체결하였음. 김승환 교육감의 당선 이후 협약에 따라 노정협의회를 구성하고, 이 협의회에서 노동교육, 5.1절 휴일 두 가지 노정협약을 체결함.
민주노총지역본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노-정협의회 구성, 노-정협약 체결은 전례 없는 일로 모범적 사례로 평가할 수 있음.
그러나 노정협의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협약이 이행되지 않는 현재 상황까지 그 과정은 난관의 연속임. 노정협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딪혔던 첫 번째 난관은 노정협의 담당 부서를 정하는 문제였음. 노동정책 총괄부서가 없는 현실에서 각 부서 간 미루기가 반복되다 정책공보담당관이 담당하는 것으로 최종 정리되었음. 이후 협의의 진행, 협약 이행 점검 역시 직접 해당부서와 소통해야 하는 조건 속에서 원만히 진행되지는 못했음.
현재 전라북도교육청에는 다양한 직종과 각 직종별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있음. 전라북도교육청의 집단적 노사관계는 전반적으로 낙제점 수준임. 교섭 시 부서 간 책임을 미루며 시간이 지연되는 사례가 빈번하고 단협 이행이 미흡한 경우도 있음. 헌법적 기본권인 집단적 권리의 의미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짐. 일례로 2019년 전라북도의회의 교육공무직 단협 수정 요구 사건의 경우도 발단은 집단적 권리에 무지한 전라북도의원이었지만 전북교육청 역시 이를 묵인하려 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면하기 어려움. 산업안전보건위원회도 구성 과정에서 부서가 서로 담당하지 않으려 미루면서 지연되는 등 제도의 취지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음.
소속 노동자와의 집단적 노사관계 차원에서 바라보더라도 각 직종별로 교섭을 담당하는 부서가 다르고, 단체교섭의 세부조항에 따라 소관 부서가 달라 이를 소통‧조정하는 과정이 필수적임. 결국 지방정부가 모범적 사용자로서 역할을 하려 한다면 교섭과 각종 소통‧조정 업무의 범위가 늘어나고 현실적으로 이를 총괄할 수 있는 전담부서의 설치가 요구됨. 이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아짐에 따라 직종 간 소통의 필요성이 증대되는 현실과도 관계있음.
“노동정책 전담 부서 설치”가 선결되지 않는 이상 단체장의 의지만으로 노동존중 행정이 시행될 수 없음. 혹은 단체장의 노동행정 의지는 노동정책 전담 부서 설치를 통해 확인될 수 있을 것임.
민주노총전북본부가 2018년 지방자치단체선거 당시 제출했던 對 전라북도교육청 노동정책 요구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음.
대주제 |
세부요구 |
노동의 가치가 살아있는 학교 만들기 |
1. 노-정교섭 정례화 · 실질화 2. 노동정책 총괄 부서 설치 3. 비정규직 없는 학교 만들기 4. 노동 교육 확대 5. 전라북도 청소년 노동상담센터 6. 직업계고 파견형 현장실습 중단 7. 모든 교육주체에게 5월 1일 유급휴일 |
민주적 학교 운영에서 출발하는 민주시민교육 |
1. 사립학교 민주적 운영 2. 인권이 꽃피는 학교 |
교육주체 모두가 안전한 학교 만들기 |
1. 학교 석면 조사 결과 공개 및 석면 철거 2. 안전한 학교 기자재와 학교 급식 3. 안전한 일터, 안전한 학교 만들기 |
앞서 언급했듯, 노동정책 총괄 부서 설치는 이행되지 않았고 노-정 교섭 실질화는 미완의 상태임.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이 시행되기는 했으나 ‘무늬만 정규직’으로 귀결되었고 여전히 비정규직 채용이 이루어지고 있음. 노동교육은 부분적 협의가 진행되었으나 가시적 진척 없이 답보상태임. 직업계고 현장실습은 ‘학습형’이라는 이름으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조기취업의 형태이고 일자리의 질이 담보되지 않고 있음. 5월 1일 유급휴일은 재차 협약을 체결하였으나 그 공감대가 확산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학인 됨. 법령에 따라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구성되었으나 그 구성 과정에서 상당기간 진통이 있었고 원만히 작동되고 있다고 평가하기 어려움.
2022 노동정책 비전
한국/전라북도의 노동현실이 2018년 지방자치단체 선거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2018년에 전북교육청을 향해 제기되었던 과제 역시 현재에도 유효함.
2022년, 우리 사회에 대두되는 주요 화두 중 하나는 ‘공정(fairness)’임. 그러나 최근 공정담론은 개인이 획득한 어떠한 성취도 중립적이지 않은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함을 감추는 효과로 작동하고 있음. 이에 따라 ‘공정’은 차별을 정당화시키며, 낙오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보수적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고 있음. 존 롤스는 당사자들 간 자연적 재능, 사회적 위치가 모두 장막에 가려져 있을 때 그 구성원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를 ‘공정’으로 설명하고 있음. 한국사회의 공정담론은 당사자들 간 자연적 재능, 사회적 위치에 차이가 현격함을 알고 있음에도 동일한 시험절차를 거치는 것을 ‘공정’이라고 왜곡하고 있음.
경쟁의 공정(fairness)을 넘어 우리가 제시할 비전은 결국 ‘평등한(차별 없는) 교육, 평등한(차별 없는) 일터’일 것임.
노동정책의 핵심적인 의제를 몇 가지 검토하면 아래와 같음.
타 지역의 지방정부 노동정책 수립 사례를 검토할 때 노동정책 비전 실현의 선결과제는 노동정책 전담부서 설치가 되어야할 것으로 판단됨. 서울교육청(노사협력담당관), 광주교육청(노동정책과) 등 교육자치단체에서 노동 전담부서를 설치하는 사례도 점차 확대되고 있음. 노-정 교섭의 실질화 역시 노동정책 전담 부서 설치와 동시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과제임.
‘비정규직 없는 학교 만들기’는 여전히 의미 있는 의제임. ‘정규직’을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라는 법률적 의미에서 고용형태만을 기준으로 삼는 정부의 분류로는 한국 사회 양극화 문제를 적절히 설명하거나 대응할 수 없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정규직’이란 용어는 ILO가 정의한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고용 안정성, 높은 임금, 자아실현 가능 등)’의 의미로 이해하는 편이 타당함. ‘비정규직 없는 학교 만들기’를 ‘모든 교육주체에게 괜찮은 일자리’로 변경하거나 부연할 수 있음. 이와 같은 의제를 제기하는 취지는, 노동 간 격차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하고, 적극적으로 이를 좁힌다는 방향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임.
노동교육은 노동권이 사회적 규범이자 존중받을 권리라는 전제에서 출발함. 여타의 학교 교과가 당장의 적용 가능 여부로 교육의 필요를 정하지 않듯, 노동교육을 근로계약서 작성, 체불임금 받는 방법과 같은 실용적 교육으로 접근하는 것은 지양해야 함. 노동권이 헌법적 권리에 기초한 사회적 규범이라면 이는 노동자 뿐만 아니라 사용자, 재벌가 자녀도 숙지하고 존중해야할 가치임. 결국 노동교육은 포괄적인 사회교과 교육이고, 그 최종적 결론으로 노동3권 교육이 이루어져야 함.
중대재해‧참사가 반복되면서 건강(안전)하게 일할 권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 1:29:500이라는 하인리히 법칙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일상적 노동안전보건 정책의 중요성을 상기시킴. 안전보건 영역에서는 사용자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함. 안전한 학교는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권이 보장될 때에야 가능함. 건강하게 일할 권리, 아프면 쉴 권리는 노동정책의 주요 비전이 되어야 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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